황극대도 2020. 4. 11. 22:40


일곱 우뢰(雨雷)

일곱 우뢰라는 말은 기독교 성경 (계 10: 3절)에 있는 말씀이다. 일곱 우뢰가 무엇을 비유(譬喩)하고 있는지를 계시록 10장 말씀 및 성경의 다른 말씀들과 연결되어 뜻을 알 수 있게 하는 말씀들이 있음을 성경(聖經)이 쓰여진 이래로 주의 깊게 눈여겨 보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다.

성경 말씀에는 비유(譬喩)된 내용으로 구분하여 하시는 말씀들을 살피고 살핀 것이 맞는지를 확인해 보는 절차가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어떠한 말씀들과 연계되어서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되는지를 알아내는 노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러한 것을 모른 채 말을 만들어서 하게 되면 오류(誤謬)로 온 누리를 뒤 덮개 된다.

예를 들어 말하면(히 5: 5 ∼ 7절)

【그리스도(예수)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그는(예수)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이 말씀에서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라고 말씀하신 이와 예수께서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린 분은 분명하게 다른 분이심을 인지하게 되는데 이러한 형태의 말씀들이 여러 곳에서 보이고 있다. 이것은 예수를 낳으신 분 보다 더 높은 위치에 계신 분이 계심을 구분할 수 있게 되며 더 높은 위치에 계신 분이기 때문에 만군(萬君: 하늘의 33天을 각각으로 다스리는 각각의 上帝)의 여호와 되시는 하나님(統天上帝: 통천상제)이 계심을 인지하게 된다.

이러한 구분 됨을 보지 못하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이 미륵불(彌勒佛)이심을 영원히 깨우치기가 어려워져 지금처럼 유대인들의 하나님으로만 알고 자신들(韓民族)은 이방인(異邦人)이기 때문에 오직 “예수”만 의지하고 믿어야만 “일곱 이레”가 시작되기 직전에 휴거(携擧)에 동참하게 되어 예수와 함께 희락과 평강(平康)을 누리게 된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들을 하게 된다.

따라서 “천년 왕국”을 설명하면서 말한 “예수께서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신 것”을 우리의 비결서(秘訣書: 해월유록)를 보이고 설명했듯이 첫 언약이 흠이 없었다면 둘째 것(해월유록의 금승인(今勝人: 참 종자: 진인 鄭氏)을 요구할 일이 없었음을 말씀하시며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예수임을 말씀하심에서 한민족(韓民族)에게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둘째 것(今勝人: 참 종자)이 대두되고 있는 말씀을 보면

“그러나 이제 그가(예수)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저 첫 언약이 무흠(無欠)하였다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찌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히 8: 6 ∼ 8절)

상기(上記)의 (히 8: 6 ∼ 13절)까지로 있는 말씀은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를 약속하시는 “새 언약” 이스라엘(북한: 포도원), 유다(남한: 포도나무) 집에 세우신다는 말씀이 있고 포도원과 포도나무는 한민족(韓民族)이 됨을 예레미아(렘) 서에서 설명하였다. 따라서 새 언약은 ①. (히 8: 9절)말씀에서 첫 것은 “낡은 언약”인 것을 ②. (히 8: 13절)말씀으로 알 수 있고 ③. (히 9: 15절) 말씀에서는 부르심을 입은 자인 금승인(今勝人: 참 종자: 진인 鄭氏)에게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 임을 알게 되고 이러한 ①, ②, ③에 해당되는 말씀들은 다음과 같음으로써 이스라엘과 유다는 한민족(韓民族)으로 비유(譬喩)하셨음을 알게 된다.

①. ”주(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구약시대의 애굽 땅은 현재 중동의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

②.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③. “이를 인하여 그는(예수)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贖)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참 종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러한 말씀 안에서 이스라엘과 유다라는 말이 언급되고 있는 가운데 ①, ②, ③항으로 된 것만으로도 새 언약은 예수와는 다른 사람인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 주어지는 언약이 되고 있다. “낡은 언약”은 ①항에 따를 때는 이스라엘 민족(유대인)이 되고 있음은 ③항으로 하여 한민족(韓民族)이 되고 있는 말씀의 내용을 살피지 못하여 기독교 성경의 구약시대(舊約時代)에서 북쪽은 이스라엘로 남쪽은 유다로 분단된 상황을 현재의 분단되어 있는 한민족(韓民族)으로 비유(譬喩)하신 말씀인 것을 알지 못하고 오직 이스라엘 민족으로만 알고 또한 유대인의 하나님인 줄로만 알고 가르치니 갈기갈기 찢겨나가 흔적조차 찾기 힘든 한민족(韓民族)의 역사(歷史)에서 활기(活氣)를 잃어버린 민족성(民族性)에 한민족(韓民族)만의 하나님이신 것마저도 모르게 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선민사상(選民思想)으로 강력한 정신적 통일체를 이루며 아랍민족을 압도하면서 세계를 움직이고 있듯이 이러한 우리의 하나님을 찾는 것이 잃어버린 역사(歷史)를 찾는 것부터가 아닌 急先務(급 선무)한 것 임도 생각조차도 하지 못하게 된 이러한 한민족(韓民族)이 어떻게 소망(所望)을 가슴 속에 품고 하나된 마음으로 찬란한 미래를 열어갈 수가 있을까? 이러하기 때문에 말세(末世)인 지금 아주 가까이 있는 때(심판 날)가 실제로 이르렀을 경우에는 모든 사람들을 넘어지게 만드는 요인(要因)이 되고 있는 것이 되고 있다.

말세(末世)의 끝에서 하나님(미륵상제)께서 역사(役事: 천지공사)하시면서 생겨난 安氏 外 2개의 토종 신흥종교 판과 李氏에 의한 신흥종교(新興宗敎)의 등장은 책(冊)과 블로그에서 설명했던 대로 배은망덕(背恩忘德)한 것으로 진행되어버려 인류에게 치명적인 재앙으로 닥치게 되고 이에 더하여 정치, 종교계 지도자들의 탐욕과 부패는 백성들의 정신적 피폐와 재물에 탐닉(耽溺)된 부패로 이어져 반공정신(反共精神)이 말끔하게 사라져 붉은 무리들(고정간첩들)로 정부(政府)를 장악하게 되어도 그것들이 누구인지도 몰라 한 자리씩 높은 자리를 내어주니 민(民), 관(官). 군(軍)은 얼씨구 하며 개, 돼지가 된 것은 백성들의 눈과 귀를 막으면서 같이 가자고 쓰레기 언론(言論)이 함께 춤을 추며 조작, 거짓된 것들로 판을 난장판으로 몰고가 이러한 것들로 하여 인과응보(因果應報)로 치달아가는 대한민국의 치세(治世)가 근본(根本)부터 몰락(沒落)하게 된 과정이 현재가 되며 공산주의적 요소가 민족사회를 지배할 수 있도록 과도기적 정치조직으로 연방제가 필요하다며 연방제는 과도기적 수단일 뿐이다라고 하는 북괴(北傀)의 연방제를 추진하겠다고 한 문재인(고정간첩)과 한통속인 적폐(積弊)덩어리들이 적폐를 청산한다고 극심한 오염(汚染)덩어리를 만들어내 예산의 사용처가 흑막으로 가려져 중공(中共)과 북괴(北傀) 퍼주기에 여념이 없는 매국(賣國) 질에 가지가 없는 몸통만 있게 된 나무가 얼마나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나? 생명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전 분야에서 행하여지는 노략과 수탈 질에서 무슨 일들이 몸통만 있는 나무에서 일어나게 될까?

한민족(韓民族)으로 인한 인과응보(因果應報)는 사람들을 놀라고 두려워하게 하며 징계(懲戒)하고 바른 것을 촉구하게 하여 다시는 악(惡)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雨雷(우뢰)로서 철퇴를 치게 되는 일로 진행된다. 이 철퇴가 끝 날에 있을 일로 정해진 묵시록(默示錄: 요한계시록 10장 3, 4절 말씀)에서 언급된 “일곱 우뢰”이다.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인봉(印封)하고 기록하지 말라는 말은 (계 10: 7절) 말씀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보게 되는데 다음과 같다.

①.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라고 한 말씀과

②. “내가(요한)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저가(일곱째 천사)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라고 한 말과 일곱 우뢰는 연결이 되고 있다.

여기에서 “밧모”라는 섬에서 노예들과 같이 지냈던 요한(예수의 제자)이 많은 백성과 나라를 다니면서 임금에게 다시 예언을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을 볼 때 이것은 밧모라는 섬에 있는 요한이 아닌 같은 이름을 갖는 제 3자가 다시 있음을 인지하게 되며 그것은 “작은 책”에 실마리가 있게 된 ①항의 하나님의 비밀이 담긴 것(일곱 인으로 봉하여진 책) 가운데 있는 작은 일로써 한 부분으로 나타나는 “작은 일의 날”로 진행되는 과정이 있음을 보이므로 장차 다시 예언하게 되는 그 때가 되었을 때 그 사람이 출현하여 많은 사람과 나라와 임금에게 예언하게 되는 일이 있음에서 “밧모”라는 곳에 있는 요한의 입에서는 당연히 꿀같이 달았지만 배에서 쓰게 된 것은 제대로 소화가 되지 못하여 생긴 쓰게 된 것이 되므로 장차(將次)에 있을 제 3자에게서 일어날 일임을 쉽게 알게 되고 전경상(典經上)에서는 “강생원(미륵상제) 집 작은 잔치”로 설명하였으며 성경 슥(스가랴) 4장에서는 “작은 일의 날”로써 설명을 하고 있다.

또한 감람나무 두 가지인 기름 발리운 자(하나님께서 내리는 神을 받아 조화(造化)를 행할 수 있게 된 자)를 말하는 이존사(二尊士: 두 증인)가 언급되고 저주가 있을 것으로 언급되는 말씀은 계시록 11장과 연결되어서 일곱째 나팔 소리에 이은 “진노의 일곱 대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①항의 내용은 (계 8장)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임을 알 수가 있으며 (계 8: 1 ∼ 5절)까지가 일곱 우뢰와 직접 연결된 말씀이며 5절의 말씀에 해당된다. 그 내용을 보면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라는 말씀이 “일곱 우뢰”인 것이며 이것은 제단(祭壇: 교회)에서와 성도(기독교인)의 기도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배은망덕하므로 야기되는 것인 요한의 배에서 쓰게 된 일로 인하여 단(壇)위의 불을 땅에 쏟게 되는 일이 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일곱째 나팔에는 “진노의 일곱 대접”으로 하여 ①항의 “하나님의 비밀인 종말(終末)에 될 것을 구약(舊約: 구약성경)으로 미리 보여 주시는 것”에 대한 언약의 말씀은 하나님의 震怒(진노)로 나타나 마치게 된다. 따라서 진노의 일곱 대접이 일곱 우뢰하고 연결이 되고 있음은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뢰가 갖는 의미대로 사람들에게 놀라고 두려워하게 하며 징계하여 바른 것을 촉구하게 하는 뜻이 있는 것처럼 “진노의 일곱 대접”을 쏟을 때에 사람들의 행위를 꼬집는 말씀이 있는데서도 보게 된다.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계 16: 9절)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계 16: 11절)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 15절)라고 하신 말씀이다.

이러한 일들의 원인은 (계 2장)으로 비유(譬喩)한 말씀에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은 일곱 교회에 임하는 일곱 교회의 사자(使者)가 예수의 대언의 영(靈)으로서 일곱 목자에게 내리게 되는데 장차 있을 일에 대한 이기는 자와 그러하지 못한 자에 대한 경계 및 훈고(訓告)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벗어 나게 됨으로 인하여 “입에서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요한)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는 말씀에서와 같이 이제 있는 일이 장차(將次) 있을 일로써 현실로 이루어진 지금 그대로 됨에 따라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일로 지속됨으로써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로 연결된 것이 되고 있다.

이러한 연유(緣由)는 인과응보(因果應報)로 나타나게 되며 (계 4: 1 ∼ 11절)에서는

“이 일 후에 내가(요한)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요한) 보이리라. 하시더라.”는 말씀과 함께

이 일 후(일곱 교회에 보내는 말씀: 이제 있는 일) 마땅히 될 일을 보이면서 하나님의 일곱 영(靈)이 있고 이십사 장로들이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게 되는 일(기독교의 권세가 다 깨어지는 것: 단 12: 7절 말씀)인 장차 될 일과 (계 5: 6절) 말씀에서 하나님의 일곱 영은 일곱 뿔과 일곱 눈으로써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靈)이 온 지면에 행하는 진노의 일곱 대접(일곱 뿔)인 저주(詛呪)로 이어지게 된 것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계 5: 8절) 말씀에

“책(일곱 인으로 봉인 된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예수)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이 말씀에서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계 8: 3 ∼ 5절)에서는 단(壇)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 위에 쏟는 앞서 설명한 하늘의 역사(役事)가 있기 때문이다.

그 말씀을 보면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祭壇)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壇)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이다.

상기(上記)의 모든 일들에 대한 일들이 있음으로 해서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인봉(印封)하고 기록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 대한 설명이 또한 되고 있는 것이다. 일곱 우뢰가 진노의 일곱 대접으로 나타나는 때는 “일곱 이레(7년)” 기간 중에 병겁(病劫)이 발생하는 삼 년 반 안에서 일어나는 재앙(災殃)으로 전 세계적인 것이 되어 인류는 진멸(殄滅) 상태에 이르는 것에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될 때(계 16: 12절)는 병겁(病劫)과 재앙(災殃)에서 벗어나는 시기로서 재림한 예수가 대 환란에서 살아 남은 자들을 인도하게 되면서 예수로부터 참 종자가 인수인계(引受引繼)하는 일들이 있음을 설명했던 때는 천지개벽(天地開闢: 전능하신 이의 큰 날)이 일어나기 직전에 있는 시간대로서 역시 다 밝혔다.

이렇게 하여 이루어지는 일이 생명수 샘이 있는 곳인 태전 용화동의 신도처(新都處)에서 한민족(韓民族)과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가 되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미륵상제) 나라의 잔치”가 열리게 되는 말씀들이 있게 된다. 따라서 (계 19: 6 ∼ 8절) 말씀에 있는 “어린 양(예수)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라고 한 말씀으로 병겁(病劫)과 재앙(災殃)이 지나갔음을 인지하게 된다.

이러한 말씀의 내용(계 19: 6 ∼ 8)을 보면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른 때는 유프라테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15眞主)의 길 이 예비된 때로서 이러한 때에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靈)이 천하의 임금들에게 가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아 전쟁을 일으키려 하자 백마 탄 자(참 종자)가 이를 신속하게 하늘에 있는 군대와 함께 세 더러운 영(靈)과 그 군대를 제거(除去)하는 때가 선행(先行)됨으로 인하여 중동지역의 환란 중에서 살아 남은 자들이 예수의 인도로 신발을 신고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동방에서 온 왕들을 만나 모두 함께 태전 용화동의 신도처(新都處)로 이동할 준비가 끝난 것이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른 때가 된다. 이러한 말씀들이 있게 된 상황을 보이시는 말씀을 보면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또 내가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靈)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 복이 있도다. 세 영(靈)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계 16: 12 ∼ 16절)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백마를 탄 자: 참 종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계 19: 11 ∼ 21절)

이러한 혼인 기약이 이르른 때를 시간 상으로 알 수가 있게 나타내고 있는 말씀이 (단(다니엘 서) 12: 11)에 기록된 것에서 볼 수가 있다. 그 말씀은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라는 말씀으로서 아마겟돈에서의 싸움이 끝난 후 예수에 의해 인도된 중동지역에서의 환란에서 살아 남은 자들이 참 종자에게 넘겨지는 때이고 단 7: 11 ∼ 14절에 해당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그 때에 내가 그 큰 말하는 작은 뿔의 목소리(단 7: 8절)로 인하여 주목하여 보는 사이에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그 시체가 상한바 되어 붙는 불에 던진바 되었으며 그 남은 모든 짐승은 그 권세를 빼앗겼으나 그 생명은 보전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더라.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人者: 참 종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하나님의 큰 영광인 神을 받아 조화(造化)를 부리는 권능으로 오는 것)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예수)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참 종자)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아마겟돈에서의 싸움은 영적전쟁(靈的戰爭)이 아니라 참 종자를 포함한 15진주(眞主: 하나님의 큰 영광으로 神人이 된 사람들)와 이들을 따르는 하늘의 군대가 조화(造化)를 일으키는 속에서 벌어지는 싸움으로서 이러한 시간대는 밝혀 설명하였으므로 생략한다. 이 이후로는 한민족(韓民族) + 이스라엘 민족 = 혼인 잔치가 벌어지는 용화동 신도처(新都處)인 태전(太田)에서 있는 때는 단 12: 12절 말씀인 “기다려서 일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라는 말씀으로 하여 그 시간대를 알고 대비할 수 있는 민족은 오로지 한민족(韓民族)뿐인 것을 인지시켜 주시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용화동의 신도처(新都處)에는 하나님의 성전(聖殿: 36만 칸 옥경대)이 세워지는 곳은 지형(地形)이 변화하게 되며 미륵상제님(하나님)께서는 이 곳을 “부(符)하나만 움직이면 산이 옮겨지리라.”고 말씀하셨고 기독교 성경에서는 산명(山名)을 언급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미치리라. 너희가 그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 하리라. 그 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자들이 떠날 것이라.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太田인 새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천지개벽이 진행되면서 36만 칸 옥경대가 세워지는 광활한 곳으로 변모하게 되는 신도처(新都處)는 중동지역의 이스라엘에 세워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상기(上記)의 모든 말씀에서 참 종자(眞人 鄭氏)는 이 세상의 임금으로 오시는 분이며 예수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대 제사장이 되심을 기독교 성경의 히브리서의 내용으로 충분히 인지시켜 주시고 있다. 또한 슥(스가라 서)에서도 확인이 되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가 한민족(韓民族)의 조상과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같음을 성경상으로 볼 때 이사야 서를 설명하면서 (사 41: 8, 9절) 말씀은 29절까지의 말씀으로 하여 야곱을 비유(譬喩)하신 참 종자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나의 종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사 41: 8, 9절)

참 종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한민족(韓民族)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 이것을 창세기 10장으로 살펴보면 노아의 세 아들(셈, 함, 야벳) 중에 야벳의 자손으로 이어지는 가계(家系)로 이어져 에벨이라는 사람에 이르러 벨렉과 욕단을 낳아 욕단의 후손들이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에 거주하면서부터 세상이 나뉘어졌다는 기록이 있고 또한 아브라함은 벨렉의 후손으로서 (창 25: 1, 6절)에서는 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여 재산을 이삭과 서자(庶子: 후처의 자손)들에게도 주면서 아브라함의 생전에 이삭을 떠나 동국(東國)으로 가게 하였더라. 는 기록에서 욕단의 후손과 아브라함의 후손(後孫)이 동국(東國)을 형성했음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아” 라고 하신 것이 된다.

이러한 연유(緣由)로 인해 구약시대의 이스라엘(북한), 유다(남한)으로 비유(譬喩)하심이 예루살렘은 새 예루살렘(太田: 용화동의 신도처(新都處))으로 말씀을 하시면서 장차 한민족(韓民族)에게 있을 일들을 새 언약으로 감추어 두셨음을 인지할 수 있게 하셨다. 단순하게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만을 보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 속에 말세(末世)에 한민족(韓民族)에게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비유(譬喩)로 감추어 말씀을 하시고 또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歷史) 속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일들이 반드시 말씀대로 이루신 것을 보이셨음에서 말세(末世)에서도 한민족(韓民族)을 통해 이루시는 역사(役事)를 사람들의 잘못으로 좌절과 고통, 눈물과 슬픔을 있게 하시고 견뎌내게 하시어 악(惡)인 사망(死亡)을 이기는 기쁨을 하나님과 같이 하는 역사(役事: 지상천국 건설)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