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순전경 3편 110절~112절 참는공부 궁예 관심법
==대순전경 정정및 주해==
대순전경 3편 110절~112절 참는공부 궁예 관심법
황극대도
2021. 5. 24. 12:39
대순전경 3장 110절~112절
110 종도들에게 항상 참는 공부를 가르치사
남에게 분한 일을 당할지라도 대항 하지말고
자기의 과실을 생각하여 끌으라 하시므로
종도들은 항상 그와 같이 닦더니 하루는 경석의 집에 계실 때
경석의 종형(從兄)이 술을 취하고 와서
경석에게 무수히 패설(悖說)을 하되 경석이 한 말도 대답치 않고 탄(嘆)하지 아니하니
더욱 기승(氣勝)하여 무소부지(無所不至)하다가 오랜 뒤에 스스로 지쳐서 돌아거거늘
천사 경석에게 일러 가라사대 네 기운이 너무 빠졌으니 좀 회복하라
덕으로만 처사하기는 어려우니 성(聖)과 웅(雄)을 합하여야 하나니라
해석
경석의 종형:
전생에 진시황을 초반에 도왔던 해원인물이다
나쁜짓을 한것은 아니고 나중에 제후들의 반란으로 왕이된 인물로
증산님 당시에는 가난하게 태어났다
경석에게 무수히 패설을 하되:
경석의 아버지 차치구가 유복했던 관계로 경석의 종형이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돈을 빌리려했으나 돈을 빌려주지 않아서 경석에게 패설(悖說)을 한것이다
네 기운이 너무 빠졌으니:
차경석이 욱하고 화를 잘내는 성격인데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고 참고 있으니
너무 참을줄만 알아도 안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성과웅을 합해서 써야한다
111 공우 사소한 일로 형렬의 일가 사람과 쟁론할 때
구릿골 김씨를 도륙(屠戮)하리라 하거늘 천사 꾸짖어 말리셨더니
그 뒤에 공우 형렬의 집에 다시 이르니 우연히 김씨 제족(諸族)이 다 모이는지라
천사 공우에게 일러 가라사대 네가 못올 데를 왔나니 이곳이 너의 사지(死地)니라
공우 대하여 가로대 김씨 일족이 비록 많으나 내가 어찌 두려워 하리이까 하니
김씨들이 듣고 웃으며 공우도 또한 웃어 이로서 화해되니라
대저 천사께서 종도들로 하여금 악담을 못하게 하심은 척이 되어 보복됨을 인함이러라
해석
공우 사소한 일로 형렬의 일가 사람과 쟁론할때:
김형렬이 당시에는 나이도 한참 연배이고
조금 배운사람으로 박공우를 무식하다고 굉장히 깔보았다
이에 사소한 일로 형렬의 일가 사람과 다투게 되었고
김씨일가를 도륙(屠戮)낼 생각이었는데
증산님께서 네가 못올 데를 왔나니 이곳이 너의 사지니라고 하자
공우가 말하기를 김씨 일족이 비록 많으나 내가 어찌 두려워 하리이까라 하여
공우와 김씨 일가가 웃게되므로 화해가 되어
척도 짓지 않게 되고 보복도 받지 않게 되었다
사람이 조금 배웠다고 돈이 조금 많다고 권력이 조금 있다고
덜 배운사람과 가난한 사람과 힘없는 사람들에게
배우고 돈이많고 힘있다고 무시하거나 무력을 행사하면 척이 된다
112 최창조의 아내가 매양 천사께서 오시는 것을 싫어하더니
하루는 천사께서 밥때를 어기어서 이르거늘
밥짓기를 싫어하여 마음에 불평을 품었더니
천사 창조에게 일러 가라사대
도가(道家)에는 반드시 아내의 뜻을 잘 돌려서
아무리 괴로운 일이라도 어기지 않고 순응하여야 복이 이르나니라 하시니
이 때에 창조의 아내가 방문밖에 지나다가 그 말씀을 듣고
보이지 않는 사람의 속마음까지 살피심을 놀래어 마음을 고치니라
해석
최창조 : 전생이 순임금
최창조의 아내 :전생이 궁예 부인이였다
부인이 궁예가 정치를 포악하게 한는걸을 못하게하고 올바른길로 인도하다가 죽었다
또한 그 자식까지 궁예가 죽여버렸다
최창조의 아내는 전생에 올바른 마음을 갖고 덕을 베풀었으므로
현재는 3생으로 나와 대략 43세로 거제도에 나와있다
밥짓기를 싫어하여 마음에 불평을 품었더니 :
최창조 최내경등이 전생의 요순임금이기 때문에
공사를 보실때 여러곳을 데리고 다니셨고 공사 내용을 기록하게 하셨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김형렬 차경석 김보경등이 최창조와 최내경을 좋아하지 않았다
김형렬 김보경 차경석등이 최창조를 미워한것으로
최창조를 미워하니 창조의 부인이 이들을 좋게 볼리가 없었고
증산님에 거동에 대한 정보도 안좋게 생각하여
부인들이 탐탁치 않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고
음식에 살기까지 있었던것에 비추어
최창조 아내가 특별히 패악을 행한적은 없었는데
이 내용을 기록하게 함으로써
최창조를 후대에 격하시키려고한 의도로 적은 내용이다
궁예(弓裔, 857?~918, 재위 901~918)는
진골의 집안에서 태어나 ‘나라를 망칠 놈’이라는
예언과 함께 모진 인생역정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타고난 힘과 재주로 사람을 모아
드디어 후고구려觀心法)이라는 특유의 술책으로 사람들을 휘어잡았다.
그것이 지나쳤을까, 포악한 성격으로 주변의 인심을 잃고,
드디어 부하인 왕건에 의해 내몰려져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도솔천의 미륵보살은 석가모니를 이어 중생을 구하러 세상에 올 것이다.
석가모니 열반 후 56억 7천만 년이 되는 때이다.
사람들을 저 위의 세상으로 데리고 올라갈 때, 그는 미륵불이 되어 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미륵 상생신앙이라 한다. 그런가 하면 미륵 하생신앙이 있다.
세상이 너무 어지러워 도탄에 빠진 중생이 56억 7천만 년을 기다릴 수 없어지면,
미륵보살더러 어서 오라 탄원한다.
미륵보살은 그 간청을 저버리지 못하고 이 세상으로 내려온다.
혼란한 시기, 스스로 미륵이라 부르며 나타나는 이들은 대체로 이 신앙에 바탕을 둔 것이다.
우리 역사상 미륵을 자처한 두드러진 예로 궁예를 들 수 있다.
901년에 개성에서 후고구려를 연 바로 그이다.
“궁예는 스스로 미륵불이라 부르며, 머리에 금빛 고깔을 쓰고, 몸에 방포를 입었다.
맏아들을 청광보살이라 하고, 막내아들을 신광보살이라 하였다.
외출할 때는 항상 백마를 탔는데, 채색 비단으로 말갈기와 꼬리를 장식하고,
동남동녀들을 시켜 일산과 향과 꽃을 받쳐 들고 앞을 인도하게 하였다.
또 비구 2백여 명을 시켜 범패를 부르면서 뒤따르게 하였다.”
- [삼국사기]
그런 궁예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던 것이 관심법(觀心法)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이다.
이 신통력이 그의 말년에 갈수록 포악한 짓을 서슴지 않는 데 쓰였으니,
그가 애써 이룬 공업을 물거품으로 만든 것도 이 관심법이었다.
915년, 궁예의 부인 강씨가, 왕이 옳지 못한 일을 많이 한다 하여 충언을 올렸다.
그러자 궁예는 부인더러, “네가 다른 사람과 간통하니 웬일이냐?”라고 응수하였다.
부인이 어처구니없어 하자, “나는 신통력으로 보고 있다.”라며
뜨거운 불로 쇠공이를 달구어 음부를 쑤셔 죽였다.
미치광이 같은 이런 짓으로 그는 두 아이의 목숨마저 빼앗았다.
미륵이 아니라 패륜의 극치이다.
심지어 궁예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던 왕건(王建)에게도 예의 관심법을 들이댔다.
반역을 모의 하였다고 다짜고짜 윽박지르며,“관심법으로 이 일을 말하겠다.”라고 하였다.
왕건을 아끼던 최응이라는 사람이 귓속말로 불복하면 위태롭다고 일러주었다.
그때야 분위기를 알아챈 왕건이 반역을 꾀했다고 하며 무릎 꿇었다.
궁예는 크게 웃으며 정직하다고 칭찬하며,
금은으로 장식한 안장과 고삐까지 내려 주는 것이었다.
눈치 빠른 왕건이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미륵으로 자처하며 세상을 구하겠다고 나선 궁예의 최후는 이 뒤에 바로 이어 온다.
악행의 끝은 민심의 이반을 불렀지만,
기왕 악행을 일삼자면 왕건 또한 살려두어서는 안 되었다.
궁예는 바로 그 왕건에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