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왕국(千年王國)

장강대하(長江大河)와 같이 흐르는 인간 역사(歷史)의 방향은 거스릴 수 없는 두 개의 물줄기에 의해 인간들에게 알려 정하여졌고 그것은 시작과 끝이 있으면서 하나로 다시 합해져 새롭게 다시 시작되는 나라가 영원히 존재하게 됨미륵상제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알리셨다. 두 개의 물줄기인 이전권능(以前權能)으로 역사(役事)하신 기독교 성경으로 시작하여 세상의 끝점에서 새로운 권능으로 이름을 갖고 남한 땅에 오신 미륵상제(여호와: 이전권능, 太乙天上元君: 새로운 권능)께서는 죄악(罪惡: 사망)으로부터 인간(人間)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즉 인간에 있어서는 하늘이 선택하게 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이 두 가지로 전부를 버리는 것이 있고 이것은 인간이 범죄(犯罪)하여 하늘 아래에서 가장 천(賤)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며 다른 한 가지는 천(賤)한 것인 악(惡)을 버리고 선(善)한 것을 남겨서 존속시키는 것 중에서 후자(後者)를 택하여 존재하게 하는 말세(末世)에 행하시게 되는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성경 마 24: 21, 22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란이 있겠음이라. 창세(創世)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란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減)하시리라.”

이 말씀이 지장보살(地藏菩薩)이신 수부(首婦)님께서 말씀하신 “궁팔십(窮八十: 79수) 달팔십(達八十: 80수)”으로 설명이 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며 그 의미는 9(7 + 8 + 9) = 216수(數)의 진행이 9(9 + 8 + 7) = 216수로 된 진행으로 천지공사(天地公事)가 진행됨은 미륵상제님(하나님)께서 역도수(逆度數)를 보셨기 때문이며 이는 세상이 역(逆)으로만 움직였기 때문이다. 날들을 감하신 것은 9 ⅹ 9 = 81수에서 2수를 감한 궁팔십(窮八十)의 의미가 된다. 따라서 선(善)한 것을 남겨서 존속시키는 것이 미륵상제님께서 택하신 자들(12,000도통사)을 위하여 날수를 감하신 것임을 알게 된다.

미륵상제님께서 남한 땅에서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심으로써 기록되기 시작한 전경(典經)으로 마무리 되는 일들이 “비밀스러운 일들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고는 일들을 시행하지 않으리라”고 하신 말씀이 성경(聖經)에 기록되어 있듯이 한민족(韓民族)에게 전해진 모든 비결서(秘訣書)와 함께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 연유가 있는 가운데 비결서의 내용이 전경(典經)과 성경(聖經: BIBLE)에 부합되지 않는 내용은 살펴볼 가치가 없는 것들에 불과한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요서(妖書)가 되고 전경(典經)과 성경(聖經)을 잘못 이해하여 자기의 말로 지어낸 것을 신도(信徒)들에게 주입을 시키면 한민족(韓民族)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고 또한 자기의 혈통을 나 몰라라 저버리며 남의 혈통과 연관하여 위천재천(爲天載天)하게 되면 가까이 다가와 있는 끝 날에서는 자기 것을 나 몰라라 함으로써 살아날 방도가 요원(遙遠)해진다.

기독교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매우 편협한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은 인도자들이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비유(譬喩: 상황을 비교하여 밝게 가르치는 것인 즉 드러난 것인 얕은 것에 붙여서 비교 대상이 되는 것을 나타내고자 하는 깊은 것을 가르키는 것)로 말씀하시는 말씀들을 모르고 눈에 보이는 대로 쉽게 알아 다른 뜻이 있음을 몰라서 쉽게 알게 된 것으로 신도(信徒)들을 인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의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일어난 일들에 붙여서 깊이 감추어둔 말세(末世)에 한민족(韓民族)에게 일어날 일들을 비유(譬喩)로 말씀하시는 부분에서의 성경 내용을 알지 못하고 윤회(輪廻)가 있음도 모르게 되면 기독교적 시각에서의 시간은 직선적인 것이라 하는 지극히 편협(偏狹)된 시각(視覺)으로 남의 것(기독교 성경)으로 보이는 것만 보는 잘못된 사고(思考)는 1차원 세상에 사는 개미류에 해당되는 시간적 삶만 말하게 된다.

우리의 것에서 우리의 조상들은 시간의 흐름을 직선적으로 보지 않고 순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시간의 흐름은 변화하는 것으로 공간 상에서 변화하고 존재하며 흔적을 남기게 된다. 달리 말을 하면 컴퓨터의 운영체계와 같다. 즉 컴퓨터의 이진수(二進數)의 운영체계는 1 + 1 = 10으로 합해질 때 윗자리로 올라갈 수 있는 공간인 자리 수가 있어야 변화가 연속되어지는데 제 3의 공간인 십진수(十進數)의 “0”이 없으면 윗자리인 중간자가 없으므로 1 + 1 = 0, 0 + 0 = 1로만 변화하게 되어 발전, 변화하는 운동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시간의 흐름도 컴퓨터의 운영체계와 같아서 십진수인 “0”이라는 공간 속에서 순환하며 변화하는 것이다.

시간이 직선적이면 이것은 1 + 1 = 0, 0 + 0 = 1로만 존재하게 되는 현재만이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계절이 바뀌는 것을 순환한다고 하지 직선적으로 흐른다고 하지 않는다. 단지 순환하고 있는 것을 직선상으로 펼쳐 놓고 보며 판별하는 것 뿐이다.

종말이 다가오고 있는 이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천년왕국을 묵시록(默示錄: 요한계시록 20장)에서 보이시고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다고 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내가(요한)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니(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상기(上記)의 말씀에서 보좌에 앉아 심판하는 권세를 받은 자들은 누구일까? 미륵상제님(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현하대세가 씨름판과 같으니 애기 판과 총각 판이 지난 뒤에 상 씨름으로 판을 마치리라.” 하시고 종이에 태극 형상의 선을 그리시며 “이것이 삼팔선이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씨름 판 대는 조선의 삼팔선에 두고 세계 상 씨름판을 붙이리라. 만국재판소를 조선에 두노니 씨름 판에 소가 나가면 판을 걷게 되리라. 세속에 가구(假九: 가짜 갑오)라는 노름판이 있어서 열 다섯 수(數)가 차면 판몰이를 하는 것이 곧 후천에 이루어질 비밀을 세간에 누설한 것이니 내가 천지공사에 이것을 취하여 쓰노라.”】……(道典 5: 7)

이 말씀에서 열 다섯 수에 관한 수(數)에 대한 것을 천부경(天符經)을 설명하면서 수(數)의 조화성(造化性)을 말했듯이 열 다섯 수가 찬다는 것은 5와 10수가 최대한으로 변화된 것이 되므로 5 ⅹ 10 = 50수가 되는 것이 되고 이것은 가짜 갑오가 벌이는 노름판에 변화가 생기는 1974년 + 50수 = 2024년에 있게 되는 일(포교 50년 공부 종필(終畢) 및 다섯 道의 생성)로 하여 판몰이가 되는 일(道戰)로 진행되는 사건(事件)이 후천(後天: 새 하늘 새 땅인 新天地)에 이루어질 비밀스러운 일을 담고 있기 때문 임을 말씀하시고 있다. 이어지는 말씀으로 만국재판소가 있는 곳은 조선에 둔다고 하셨으므로 후천(後天)에 있을 일소삼궁(一所三宮) 공사(公事)를 일소(一所: 참 종자), 삼궁(三宮: 배씨, 조씨, 윤씨)으로 보이신 사람들이 사진주(四眞主)로써 보좌들에 앉아 심판하는 권세를 받은 자들이 된다.

다음으로 예수의 증거(계시록 1: 20절의 말씀이 일곱 교회와 일곱 교회를 비유(譬喩)한 말세에 일곱 교회인 일곱 목자에게 내리는 대언의 영)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이 살아나는 것은 부활(復活)로써 첫째 부활이고 서로 상봉(相逢)을 하게 되는 것이 후천(後天)인 천지개벽(天地開闢)이 끝난 후에 있는 일이 된다. 그렇게 됨을 미륵상제님(하나님) 말씀으로 보면

【앞으로 저녁에 본 사람 아침에 못보고 아침에 본 사람 낮에 못 보는 때가 있느니라. 동서남북이 바뀔 때는 천동지동(天動地動) 일어나고 송장이 거꾸로 서며 불도 켜지지 않으리니 놀라지 말고 마음을 키우라. 오장(五臟)이 바르지 못한 자는 수숫대 꼬이듯 하여 죽고 거짓말 하는 자는 쓸개가 터져서 죽으리라. 죄가 없어도 있는 듯이 잠시라도 방심하지 말고 조심하라. 앞으로는 적선적덕(積善積德)한 사람이라야 십 리 가다 하나씩 살 동 말 동 하느니라. 내 집안, 내 동기간, 내 자식이라고 다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자식도 복이 있어야 사느니라. 천하에서 개벽(開闢: 천지개벽)이 되어야 서로 상봉이 되느니라. 그러면 이제 태평시대가 오느니라.】……(道典 7: 24)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과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않고 이마와 손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예수)와 더불어 왕 노릇을 천년 동안 하게 되는데 있어 왕 노릇을 한다는 것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즉 봉건시대(封建時代) 이전에는 정치권력 기구가 갖추어져 있지 않아 제사장(祭司長)에게 일임(一任)되어 있어서 왕 노릇을 하였고 봉건시대에 들어서는 정치권력 기구를 갖춘 황제(皇帝)가 등장하여 분권(分權)형태를 갖추게 되면서 왕(王)과 같은 제후(諸侯)를 임명하여 담당하는 구역을 다스리게 하는 왕 노릇이라는 뜻이 붙게 된다.

이렇게 되는 연유는 일소삼궁(一所三宮)이 보좌들에 앉아 심판하는 권세를 갖는 만국재판소와 연결되기 때문이고 삼궁(三宮: 배씨, 조씨, 윤씨)은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위(位)에 앉아 왕 노릇 하는 자들을 다스리게 된다는 의미가 되는 이 분들이 사진주(四眞主)이며 참 종자는 예수께서도 말씀하신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라고 말씀하신 분이다. (기독교 성경 요 14: 29 ∼ 31절 내용 참조)

이렇게 되는 상기(上記)와 같은 연유는 이사야 서, 예레미야 서(렘), 에스겔 서, 다니엘 서(단)를 설명하면서 밝혔으므로 생략한다. 이어서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이 사는 것은 성경(聖經)의 에스겔 서(書) 37장 14절까지의 말씀으로 알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에게 생기(生氣)를 불어 넣어 마른 뼈들이 살아나 무덤을 열고 나와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는데 이 때에 하나님께서 신(神)을 주심으로써 진정한 삶을 얻게 됨으로 인하여 고토(故土 혹은 古土: 태전인 새 예루살렘)에 거(居)하게 되어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않고 이마와 손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중동지역에서 발생하는 환란(患亂)중에서 어렵게 환란을 극복하고 살게 된 사람들과 상봉(相逢)하게 됨을 말씀하시고 있다.

상봉이 되는 경우는 “어린 양(예수)이 저희의 목자(牧者)가 되사 생명수 샘(태전의 신도처(新都處):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시고”(계시록 7: 17절)와 같이 고토(故土, 古土, 本土: 새 예루살렘)로 환란이 끝난 뒤에 인도됨이 있고 나서 이후에 곧바로 천지개벽(天地開闢)이 지난 후에 있는 일이 되고 있다. 또한 환란이라 함은 중동(中東)에서의 3년반의 전쟁과 기근(飢饉) 이후 3년반은 전 세계적으로 퍼진 병겁(病劫)에서 인류가 진멸(盡滅)을 당하는 대 환란을 말한다. 이러한 환란(患亂) 이후에 죽은 자에게 하나님께서 신(神)을 주심으로 진정한 삶을 갖게 되는 것은 소망(所望)이 없는 사람과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 임을 성경의 다음과 같은 말씀에서 보게 된다.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죽은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하나님)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죽은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하나님)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하나님)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데살로니가 전서) 4: 14 ∼ 18절)

이 말씀에서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가 죽은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한다는 말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미륵상제님(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했듯이 “천하에 개벽이 되어야 상봉(相逢)이 되느니라”는 말씀과 성경의 에스겔 37장을 설명한 것에 답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의미는 죽은 자가 살아나 살아 있는 자와 만나기 전에 하나님의 신(神)을 먼저 받아 만사지(萬事知)하게 되었음을 말하고 온 누리에 만사지(萬事知)문화가 살아 있는 자에게 모두 열리는 때는 치천하(治天下) 50년인 때인 관왕시대(冠旺時代: 2094년)가 되어서야 열리기 때문에 살아 남아 있는 자가 죽은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단지 상중하의 등급이 있는 12,000도통사(道通師)는 2033년 중에 일시에 출현하므로 살아 남은 한민족(韓民族)은 먼저 이러한 일들을 맛보게 된다. 또한 상봉(相逢)이라 함은 태전(太田: 용화동 신도처: 생명수 샘)에서 살아 남은 자들의 부모와 선친(先親)들이 상봉하게 됨을 말씀하신 것이 된다. 온 누리에 만사지(萬事知)문화가 열리는 것을 성경 욜 2: 28절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후에(治天下 50년이 되는 때) 내가 내 신(神)을 만민(萬民)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理想)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참 종자)과 여종(여자 眞人(진인))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아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이 말씀에서 남종과 여종에게 여호와 하나님(미륵상제, 太乙 天上 元君)께서 신(神)을 부어주시는 그 때는 피와 불과 연기기둥(기근과 전쟁 및 병겁(病劫))과 전능하신 이의 큰 날이 이르기 전(前)이며 해가 어두워지고(하나님께서 얼굴 빛을 가리우는 것) 달이 피 빛같이 변하기 전(前)에 부어주시는 신(神)이다. 또한 달이라는 것은 해(태양)으로부터 빛을 받아 발광(發光)하는 존재이므로 다섯 道인 다섯 성인(聖人)을 뜻하게 되며 피 빛같이 변하는 것은 개(犬, 狗)가 지르는 불로 인하여 다섯 성인이 불리해지는 도전(道戰)이 일어남을 의미한다. 여기에서의 시온산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聖殿)과 새 예루살렘으로서 태전(太田) 용화동의 신도처(新都處)를 말하고 남은 자는 동서(東西)의 교(敎)들에게 사람들을 다 빼앗기고 이리 가지도 않고 저리 가지도 않는 못난 하대치(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말함이며 이들이 여호와이신 미륵상제님의 부르심을 받아 12,000도통사(道通師)로 거듭나게 되는 사람들이다.

성경의 살전(데살로니가 전서) 4: 14 ∼ 18절 말씀을 설명한 중에서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하나님)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은 병오현불상(丙午現佛像: 미륵불이 병오(丙午: 2086년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말함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게 된다는 “임마누엘”이다. 또한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 공중에서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이 되었으므로 가능한 일이고 하나님의 신(神)을 받아 함께하므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조화(造化: 구름) 속에서 같이 있게 됨을 뜻하고 있다.

이러하듯이 공중 들림(휴거)이 환란 전에 일어나 환란을 피하는 사람들이 있게 되는 일이 아니다. 전 세계적인 병겁(病劫)으로 인류가 진멸되는 슬픔과 고통의 아수라장 속에서 누구만 구원되어 천상에서 예수와 함께 희락(喜樂)과 평강(平康)함을 누리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욕보이는 일이 된다.

성경이 우리 것이 아닌 남의 것을 가지고 남에 의한 것만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이 미륵상제님이신 것을 모르니 우리 것에서 선(仙), 불(佛), 유(儒), 기독(基督)이 다 있었다는 것을 알고 이 모든 것을 보고 연구하며 공통점을 찾았다면 말은 다르지만 이치(理致)는 모두 하나인 것을 알지 못하여 상생(相生)하는 새로운 것을 찾지 못하는 것은 지식이 없으므로 남의 것에서 편협된 생각만을 키워 사람들에게 주입시키면 어떻게 될까? 우리에게서 가르침으로 전해온 옛 말씀에

“어떤 선사(仙士)가 있어 인과불매(因果不昧: 인과에 어둡지 않다)라고 답해야 할 것을 인과불락(因果不落: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답하였다가 수백 생(生)을 뱀으로 사는 업보를 받았다고 전해지는 말씀이 있다. 법(法: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면 차라리 모른다고 하였으면 원하지 않은 죄업은 쌓이지 않았을 텐데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를 한 죄(罪)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자기 마음에 먼저 보시(布施)하는 먼저 된 것이 있어야 됨을 알고 마음을 보시한다면 그 복덕은 가히 생각으로는 헤아리지 못할 만큼 엄청나게 크다.”

진(眞) = 불(佛) = 자비(慈悲) = 평등(平等) = 마음을 가르치는 것이 仙, 佛, 儒, 基督敎가 가르치는 바탕이고 이것에는 中인 중용(中庸)이 있다. 中庸을 미륵상제님(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로 본다면 모든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과 사람이 할 일을 구분하여 말씀이 계셨음을 알아야 하는데 알지 못하여 예수만 믿으면 이러한 환란 중에 공중 들림(휴거: 携擧)을 받아 자기들끼리만 구원을 받고 나머지는 쭉정이들로 불살라지게 된다는 말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 구분된 말씀은 무엇일까? 이것은 사람의 죄악(罪惡)이 쌓여 하늘 아래서 가장 비천(卑賤)한 것이 되어 자연(自然)에서 도태되어야만 하는 상황을 사람이 몰고 가자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덕(德)을 쌓아 삶의 기운을 불러들이게 마지막 순간까지 역사(役事: 천지공사)하시고 무슨 일에서나 서로 느끼는 감정이 완전하게 순수한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의 관계를 이어가고자 하심이 환란(患亂)을 같이 하여 슬픔과 좌절, 눈물과 고통을 뚫고 죽음(惡인 사망)을 이긴 성취를 통한 기쁨을 서로 나누고자 하심이다. 이것은 전경(典經) 및 성경(聖經) 구절의 말씀에서 특히나 진노(震怒)하시는 성경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여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공중 들림(휴거)을 잘못 이해하여 표출되는 행태가 되고 있다.

공중 들림이 휴거(携擧)인 것은 맞지만 사람이 눈으로 보게 되는 때는 마지막 때로서 중동(中東)지역의 기근과 전쟁의 환란 속으로 빠져들어 이스라엘이 “열 뿔 달린 짐승(블로그 다니엘 書 설명 참조)”에게 점령 당하면서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北學主: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과 두 짐승)”에게 이존사(二尊士: 두 증인)가 죽게 될 때 3일 반이 지나서 일어나는 일뿐이며 이 후에는 천지개벽(天地開闢)이 지난 뒤 후천(後天)에서는 참 종자를 위시로 한 12,000도통사(道通師)들이 조화(造化)로 다스리는 세상에서 기독교 성경에서 말하는 “구름을 타고 오시리니”, 구름 위에 앉아”라는 말씀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큰 영광으로 조화(造化)를 부리는 신인(神人)이 된 인자(人者: 사람)가 있음을 의미하게 된다. 이러한 人者(인자)는 일소삼궁(一所三宮)인 사진주(四眞主)를 포함한 15진주(眞主: 미가 5: 5: 일곱목자(七星大佛)와 여덟군왕)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두 증인이 죽게 되는 말씀을 보면 휴거(携擧: 공중 들림)가 되는 것을 다음과 같음으로 알게 된다.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두 증인: 두 감람나무)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계 11: 11, 12)

상기(上記)의 말씀 이후로는 휴거(携擧)라는 것은 없는데 왜 7째 나팔 소리가 울릴 때 휴거가 일어난다고 목사들은 말들을 할까? 고린도 전서(고) 15: 51, 52절 말씀에 기인하고 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는 이 말씀은 앞서 설명하였듯이 천지개벽(天地開闢)이 있은 후에 있는 일임을 말했다. 이것을 성경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계 11: 15절로써 그 내용은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하나님)와 그 그리스도(예수)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에 있다. 이 말씀은 계 20: 4, 6절 말씀에 있는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시리라. 와 연결되면서 계 21장의 새 하늘 새 땅인 천지개벽(天地開闢) 이후에 있는 일들과 같은 선상(線上)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연유는 계 11: 19절 말씀에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서 하나님의 언약의 궤가 보이니”라는 것으로 하여 (고 15: 51, 52절)말씀과 (살전 4: 14 ∼ 18절)의 말씀을 언약하신 대로 이루시겠다는 약속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천지개벽(天地開闢: 전능하신 이의 큰 날)이 지난 후에 12,000도통사들이 조화(造化)로 다스리는 세상을 전경(典經)을 통해서 보면 다음과 같다.

【후천(後天)에는 천하가 한 집안이 되리니 모든 언어동정(言語動靜)을 통일하여 조금도 편색(偏塞)함이 없게 하리라. 위무(威武)와 형벌을 쓰지 않고 조화로서 창생을 다스리되 자기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게 하며 벼슬아치는 직품(職品)에 따라 화권(化權)이 열리므로 분의에 넘치는 폐단이 없고 모든 백성의 쇠병사장(衰病死葬)을 물리쳐 불로장생(不老長生)으로 영락(永樂)을 누리게 하리니 너희들은 환골탈태(換骨奪胎)되어 키와 몸집이 커지고 옥골풍채(玉骨風采)가 되느니라. 후천(後天)에는 덕을 근본으로 삼아 이 길에서 모든 복록과 영화를 찾게 되느니라.】……(도전 7: 4)

휴거에 목말라 하는 기독교인들과 목사들은 성경의 마 24: 41, 42절 말씀을 갖고도 말을 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는 이 말씀은 노아의 홍수 때 깨닫지 못한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항상 깨어 있어 예비하고 있으라는 “열 처녀”에 비교하여 말씀하신 것과 같으며 데려감을 당하는 것이 휴거(携擧: 공중 들림)로 연결되는 경우는

휴거(携擧)의 뜻이 천상(天上)에서 내리는 하나님의 신(神)을 받아 하나님을 만나는 조화(造化)를 부린 경우가 되므로 아무에게나 그리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택함을 받는 사람이 연단(鍊鍛)을 통해 이루어지는 일이 된다. 따라서 택함을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연단하는 중에 하나님의 신(神)을 받는 사람이 있게 되고 자기만 알고 마는 즉 다른 사람은 모르는 가운데 발현(發顯)되는 일들이 있으므로 해서 12,000도통사(道通師)들이 일시에 생겨나는 불일출시(佛日出時)를 말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일들이 있음을 성경 (사 66: 7, 8절)의 말씀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시온은 구로하기 전에 생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자(참 종자)를 낳았으니 이러한 일들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들을 본 자가 누구이뇨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순식간에 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구로하는 즉시에 그 자민을 순산하였도다.”와 같은 일들에서만이 휴거를 말할 수 있게 된다.

히브리서 5, 6장에서는 예수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대제사장이라 칭함을 받은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만 해당되며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을 사람에 대한 말씀이 있는데 12,000도통사(道通師: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라는 말씀)에 관계된 말씀으로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가 어렵다 하시었고 하나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장성(長成)한 자가 되어서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鍊鍛)을 받아 선악을 분변(分辨)하게 된다 하셨고 그리스도(예수) 말씀의 초보를 버리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죽은 행실의 회개, 하나님께 대한 신앙, 세례들과 안수,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대한 교훈을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는 말씀은 12,000도통사들이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어 하나님 말씀의 선(善)하심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는 곳이 완전한데 임을 말씀하시고 있다.

이것은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를 알았다면 7년간의 환란이 전 3년반은 중동전쟁, 후 3년 반은 병겁(病劫)으로 진행되는 것을 모르니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을 당하면서 두 증인이 죽임을 당하여 휴거(携擧)되는 공중 들림을 모르는 상태에서 7년간의 환란 전에 누가 휴거를 받는다는 말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예수께서 이루신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신 것은 무슨 의미가 될까? 우리에게 전해진 해월유록에는 다음과 같이 예수께서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게 하신 말씀이 있다.

“標格舊勝時 詩篇今勝人 休嗟二疏去 聖主有溫綸(표격구승시 시편금승인 휴차이소거 성주유온륜)”

(옛날에 품고 있는 굳은 마음을 본보기로 삼은 이긴 자(예수)에 대한 말씀이 있고(성경: 신약, 구약) 시편(詩篇: 해월유록)은 지금에 이른 이긴 자(참 종자)에 대한 말이다. 두 번째(今勝人)에는 뚫어서 악의 세력을 제거하는데 감탄하고 기뻐하게 하는(休嗟) 구세주(聖主)는 온화하고 두터워서 따뜻하게 하나로 통일하여 다스린다.)

성경에서도 언급된 참 종자와 두 증인은 어느 민족일까? 기독교인들과 목사들은 예수가 재림하여 구원을 행하고 모든 것을 하나로 통일하여 다스리게 되므로 예수만 믿으면 천국에서 예수와 함께한다고 하지만 살아서 가는 천국인지 죽어서 가는 천국인지 조차도 모르고 말들을 한다. 또한 한민족(韓民族)이 하나님을 아는 유대인과는 다른 이방인(異邦人)인 것처럼 말을 하는 데서 기인하여 예수만 믿으면 만사(萬事)가 형통(亨通)하는 것처럼 말을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것을 로마 書(롬) 3: 29절을 보면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니라.”는 말씀에 갇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계신 것이다. 참 종자, 이존사(二尊士: 두 증인), 12,000도통사(道通師) 모두가 한민족(韓民族)임을 밝혔듯이 우리는 이방인이 아닌 것인 대 환란(병겁: 病劫)에서 인류를 구원하게 되는 종통(宗統)인 것을 성경의 말씀은 비유(譬喩)로 말씀하심에서 분명하게 韓民族과 이스라엘 민족을 구분할 수 있게 하셨음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될 때는 민족의 역사성(歷史性)과 정통성과 정체성을 찾게 된다.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안 것으로 가르치니 온전한 것이 되지 못하여 더욱 민족의 정체성에 혼란과 자괴감을 일으키게 되어 지금과 같은 붉은 무리들에게 지배 당하여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워지는 국면을 갖게 된 일면도 있는 것이다. 성경 (마 15: 24절)에서는 이방인인 한 여인의 딸이 귀신이 들려 고침을 청하였으나 예수께서 대답이 없는 가운데 그 여인이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함으로써 그 여인의 믿음으로 딸의 병(病)을 고침 받는 내용에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는 이 말씀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예수가 재림하여 인도하는 계시록 7장: 14 ∼ 17절상의 백성은 살아 남은 이스라엘 민족과 예수의 피에 그 옷(육신)을 씻어 희게 된 자인 중동(中東)지역의 환란에서 살아 남아 남한(南韓) 땅 태전(太田: 새 예루살렘: 생명수 샘이 있는 곳)에서 조선 민족 + 이스라엘 민족이 됨에서 종통(宗統)은 참 종자에게 있게 되고 이러한 연유는 전 세계적인 환란인 병겁(病劫)의 와중(渦中)에서 인류가 진멸해 갈 때 참 종자와 함께 한 12,000도통사들이 구원을 행하면 참 종자에 의해서 세계종교 대 통합이 이루어져 용화 미륵불교(龍華 彌勒佛敎)로 전환되면서 후천(後天)에 세워지는 대학교의 주학(主學)은 불이문삼각(不二文三覺) 32경, 대리경(代理經)의 조화학(造化學), 팔괘(八卦)의 512수(數)로 가르치고 종학(終學)은 법방문(法方文)인 현무경(玄武經)으로 하는 천황학(天皇學)으로 가르치며 불이문삼각 32경은 후천(後天) 5만 년간 인간의 표본이 되는 중생도표(衆生道標)로서 수단(修單)하게 되는 불멸의 경전(經典)이 되는 불교(佛敎)가 다시 융성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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