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봉도수(龍鳳度數)

용(龍)과 봉황(鳳凰)에 대해서는 별도로 말을 하지 않아도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는 다들 알고 있다. 그러하면서도
전경상에서 언급하고 있는 용과 봉황과 관련하여 인도자는
거짓치기로 일관하고 그 종도(從徒)들은 인도자들에 의해서
허황된 꿈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이 용과 봉황인 것으로
알고 청춘을 바쳐 맹종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용과 봉황을 인사(人事)관계로 말하면서 ‘사람 둘’로
보기 때문인데, 여기서 한 사람이라도 없게 되면 용과 봉황의 관계는
성립될 수가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고 더욱이 ‘한 사람만 있어도
나의 일은 이루어진다.’ 라는 말씀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이것을
악용하는 자들에 의한 폐해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용과 봉황을 상제님과 수부님과의
관계로 보면 이치에 맞지를 않게 된다.

왜냐하면 건곤(乾坤)은 천지로써 그 자체가 무극이면서 순수한
음과 양으로 존재하면서 스스로 변성하여 태극(太極)을 형성하는
것인 우주가 순환하는 이치(理致)에서 이루는 수(水)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용과 봉황은 두 가지의 관점에서 살펴볼
수가 있게 되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

상제님께서 수부를 천거하여 고수부(高首婦)님을 맞아들임으로써
乾坤의 관계가 성립되고 이러한 무극이 태극으로 변성하면서
황극(皇極)으로 발전해 갈 때 위 도(圖)에서와 같은 우주가
순환하는 이치에서 수(數)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으며 36數에서
사물의 완성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진(辰) 5土가
1水로 변화하여 있는 자리로서 5 + 1= 6이 되어 형(形)을 완성한
곳이다. 이 36수는 순수한 음양의 작용으로 만물을 창조한 것을
말하고 人事로는 사건의 형태를 이룬 것을 의미하게 된다.


또한 순수한 음양의 작용이라는 것은 무극(乾坤)이 일월(日月)에게
작용(作用)을 대행시키지 않고 직접 천지운동을 하는 象을 말한
것으로 곤토(坤土)를 환원하는 곳을 의미한다.


따라서 무극→태극→황극으로 분열 발전하는 과정의 마무리는
午火에서 용사를 하고 午火가 용사를 할 수 있는 바탕을 坤土가
준비한 5 + 1= 6水로 변화를 이루어 수생어화(水生於火)가 일어나
사(巳: 2火)와 오(午: 7火)가 자리를 잡는데 巳는 2火 + 8木 =
10무극으로 전환된 자리는 2火가 8木으로 변화하면서 木의
용출력(湧出力)이 제로가 된 자리는 “그것은 뱀이 아니라,
용마(龍馬)니라. 큰 자로 들어간다.” 는 (도전 5: 108: 7)의
말씀으로써 큰 자= 大道 = 10무극을 이루는 길을 닦아 놓은
것을 의미하고, 이것을 토대로 하여 午는 7火 + 7火= 10 + 4로
10무극과 합일하고 4金(후천선경)을 이루는 길을 여는 巳(박씨
聖人: 물 아래 박서방)와 午(진인 鄭氏)가 있게 되는 움직임에서
坤은 두목이 되고 午는 대두목이 되는 연유를 보게 된다.


따라서 용(龍)은 水로써 무극인 건곤(乾坤)이며 봉황은 火로
상제님의 대행자로 오시는 진인 鄭氏가 됨을 뜻하고 있는 것이
한 사람만 있어도 일을 이루게 되는 봉황’을 의미하는 봉황도
坤土(수부님)가 환원되는 것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반드시
짝을 이뤄야만 성립되는 용과 봉황의 관계가 되어야 함을 알 수가
있고 水·火가 일치라는 것을 보임으로써 龍= 乾坤 = 天地父母가
되고 봉황은 천지부모로부터 태어난 부모와 자식 관계가 성립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모와 자식 관계를 말씀하시는 것을 격암유록과 성경에서 찾아볼
수가 있는데 롱궁가(弄弓歌)에서 볼 수가 있고 전술(前述)하였으며
승운론(勝運論)에서 말씀의 일부를 보면


鷄龍都邑海島千年 上帝之子無疑하네 雙弓雙乙知者生 訪道君子不知人가

계룡도읍해도천년 상제지자무의하네 쌍궁쌍을지자생 방도군자부지인가

⇒ 한반도(海島)의 계룡(모악산 아래에 위치)에 천년 도읍을 건설하니 그가

上帝의 아들임을 의심하지 말라. 양궁쌍을(雙弓雙乙)을 아는 사람은 삶을 얻으니

道를 찾는 군자가 그 사람을 모르면 되겠는가?

라는 말씀에서 알게 되고수부님께서 팥정이 징검다리를 건너시며 “하나, 둘, 셋, 넷”

하고 담뱃대로 노둣돌을 세시고 네 번째 돌을 담뱃대로 탁 때리시며 “이것이 내 새끼다.”

하시니라.···(도전 11: 308)

의 말씀에서 볼 수 있으며 네 번째 돌의 의미는 車氏→ 李氏→ 安氏로 이어지는

이종물의 3대가 있고난 이후에 있게 되는 봉황을 말씀하신 것이며 이것은 다음과

같은 말씀에서 확인 된다. 


(천지개벽경 을사편 4장 209P)
造主者난 輩失兩夫也오 煽蚊者난 有功之文也오 亥馬者난
조주자난 배실양부야오 선문자난 유공지문야오 해마자난
→주인을 만듦은 배(輩)가 두 사나이를 잃음이요,
선문(煽蚊)은 글의 공(功)이 있음이요, 해마(亥馬)는


南出北流之水요 種財可畏난 亂道之世야 種德可生은 眞法之始也니라
남출북류지수요 종재가외난 난도지세야 종덕가생은 진법지시야니라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물이요, 재물로 위압을 행함은 道가
어지러운 세상이요, 덕을 심어야 살 수 있는 것은 진법의 시작이니라.
이 내용에서 주인(임금)을 만듦은 輩(어께를 나란히 한 동료)가
두 사나이를 잃는 것을 뜻하는 두 사람이 죽게 되면(차씨→ 이씨→
안씨 중에서 이씨와 안씨를 말함) 선문자(煽蚊者)= 해마자(亥馬者)가
있게 되는데 煽蚊者는 모기떼들을 부채질로 쫓아내는 선지식(善知識)
이 나와 글로써 공을 세우는 사람은 해(亥)와 오(午: 馬)를 이은 길인
기해(己亥: 1959)년에 돌아가신 강순임 선사는 남쪽에서 출현하여
거일(去一)한 분이며, 馬는 갑오(甲午: 1954) 정월 삼 일에 남쪽
(제주도)에서 출생하여 바다를 건너 북쪽에 있게 된 진인 鄭氏는
래일(來一)하는 사람이 있게 됨을 뜻하고 있는 봉황이 되고 있다.


재물로 위압을 행하고 道가 어지러운 세상을 만든 것은 차씨→
이씨→ 안씨를 말하는 이종물을 말함이고 덕을 심어 삶이 있게
하는 진법(眞法)의 시작은 낙종물이 있어 시작되는 것이 천하
파종(播種)공사에서 비롯되는 재건(再建)의 시작을 의미한다.       


기독교 성경을 통해서도 문리(文理)가 연결되는 말씀을 볼 수가 있는데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하시며 “배(胚)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胎)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하시면서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
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에서 야곱의 집은 참종자의 가족을 말하고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는 열매 맺는 백성인 12,000명의 도통사(道通師:
참종자의 가족을 포함)를 말한다.


야곱이 참종자를 의미하게 된 것은 야곱에게는 형인 ‘에서’가 있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을 모든 축복을 야곱인 동생이 어머니의 도움으로 그 축복을 빼앗음으로
하여 빚어진 일들을 비유하시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일컬음을 받은 자라는 말로 십승인(十勝人)을 말하며 상제님의 하늘 백성이라는 뜻이 된다.      


용(龍)과 봉황(鳳凰)의 관계에는 상기와 같이 되어야 하는 상제님에
관계된 일들이 생겨남으로써 도수로 정해진 것이며 사람이 마음속
하늘을 표출할 때는 이목구비(耳目口鼻)를 통하여 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하늘은 天地人神이라는 사물을 통하여 그 마음을
나타내었는데 천지의 마음이 형상으로 나타낸 것의 결과는 천지공사의
결과에서 보듯이 항상 하늘에 그 징조를 보이셨고 구름, 비, 안개,
천둥, 번개인 자연 현상으로 나타내시었다.


허령의 시간대에서 사람은 그 징조를 알지 못했고 지각의 시간대
에서도 그 징조를 모르고 있었으며 신명의 시간대인 지금부터는
이러한 자연현상에 귀를 기울여 눈 여겨 볼 때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비밀을 사자(使者)에게나 사람들에게 보여주시지 않고서는
결코 행함이 없으신 것을 이미 천지공사를 통하여 알게 하셨지만
사람은 전경을 보면서도 이러한 것을 느끼지도 못하고 생각조차
없는 무지 속에서 안개 속을 방황하고만 있을 뿐이다.   


(둘째)

고후비(高后妃) 님께서 계유년 동지절에 오성산으로 들어가시려고
용화동을 출발하실 때에 이상호를 불러 세우시고 상호를 담뱃대로
가리키시며 “상호야” 부르시어 대답하니 “너 저기에다 건곤의 사당을
짓겠느냐.” 하시거늘 상호가 대답하지 못하고 있으려니까 고후비
님이 불 같이 대답을 재촉하여 가라사대 “이놈아 빨리 대답하라
빨리 대답해!” 하시며 담뱃대로 등줄기를 때리시거늘 상호가
엉겁결에 “예 예 짓겠나이다.” 하니 가라사대 “그래야지 그래야
하고 말고 일 후에 사람이 나거든 용봉기를 꽂아 놓고 잘 맞이해야
하느니라.” 하시더라···(선도신정경)  


건곤의 사당은 기지로서 하나님의 성전(聖殿)을 세워야 하는
터전이다. 이러한 말씀이 계심으로써 그 터전이 준비가 된 것이며
그 터전에 지대를 쌓는 것은 기초 돌을 놓는 것으로 잘 도착한
남조선배가 수행(修行)을 위하여 찾는 곳이며 선문(煽蚊)을 행하여
옳은 것을 전하는 것과 수행이 끝나는 때는 재건이 완성된
시점(2022,2023년)= 비룡재천(飛龍在天)이 된 참종자와 같이
하게 되는 의미를 읽어야 하고 또한 상제님의 천지공사에
수종했던 사람의 성명 석자에서 그 때를 알리셨다.


따라서 용봉기(龍鳳旗)는 어떠한 목적을 위하여 표명하는 용도가
있는 旗를 꽂아 놓고 사람을 잘 맞이해야 하는 것이 두 李氏와
鄭氏와의 싸움이 있게 되는 관계성과 연결되고 있다.  

무극(乾坤)이 순수한 음과 양으로 변성(變性)하여 태극(1水)을
형성하고, 2火를 포태하여 황극으로 발전하듯이 태어난
봉황(鳳凰)에도 음(陰)과 양(陽)이 존재해야만 사물을 이루게 되는
이치가 있기 때문에 “사람 둘이 없어서 나서지 못하느니라.”는
말씀 속에서 보게 되는 두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첫째’의 설명이 성립된 일로 이루는 봉황 또한 남(男)과
여인(女人)으로 오게 되는 용봉은 계룡(鷄龍)의 의미를 갖춘 용봉기가
표명하는 것은 상제님의 일을 대행하여 이루는 후천선경(後天仙境)을
건설하는 사람임을 표명하신 것이 된다.

※ 송가전(松家田)
誰知烏之雌雄으로 千鷄之中有一鳳에 어느聖이眞聖인고
수지오지자웅으로 천계지중유일봉에 어느성이진성인고
→어느 누가 암까마귀인지 수까마귀인지 알겠는가?
천 마리의 닭 가운데 봉황(鳳凰)이 한 마리 있으니 어느 분이
성인(聖人)이며 참된 성인인가?
 
眞聖一人알랴거든 牛聲入中차자들소
진성일인알려거든 우성입중찾아들소
→참된 성인(聖人)한분을 알려거든 소 울음소리
나는 곳을 찾아 들어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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