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극대도
2021. 5. 23. 09:08
2021. 5. 23. 09:08
2:34절~37절, 이환구, 신원일
2:34 섣달에 원평에 계실 새
그 때에 어사 박재빈이 전라북도 일곱 고을 군수를 파면하고
장차 전주에 출도하려함에 군수 권직상의 지위도 위태하게 된지라
김병욱은 이때에 전주 육군 장교로서 권직상과 친분이 있을 뿐 아니라
권직상이 파면되면 자기의 일에도 또한 낭패 될 일이 많으므로 그 일을 근심하여
천사께 그 대책을 묻거늘
천사 가라사대 그 일은 무사하도록 끌러주리니 근심치 말라 하시더니
그 뒤에 박어사가 권직상을 파면하려고 전주부에 들어오자
때마침 박어사의 면관비훈이 전주부에 이르니라
정정
권직상, 김병욱:
그 시점에 박어사의 면관비훈이 전주부에 이르러
박어사가 서울로 올라가게 된 것은 맞다.
그러나 증산님이 박재빈과 김병욱의 일을 끌러 주신 일이 없다.
권직상이 누행이 없었다면 박어사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고
김병욱이 그런 일을 증산께 의논했다면
증산께서 김병욱의 마음을 모를리 없으셨을 텐데
증산님께서 불의 한 일에 관여하시거나 해결해 주실 리가 없는 것이다.
2:35 하루는 종도들을 데리시고 모악산 용안대에 이르사 여러 날 머무르실 새
마침 눈이 크게 내려 교통이 두절케 되었는데
양미가 두 끼 지을 것 밖에 남지 아니 하였으므로
종도들이 서로 걱정하거늘 천사 들으시고
그 남은 양식으로 식혜를 지으라 하시니
종도들은 부족한 양식을 털어서 식혜를 지으면
더욱 부족하여 굶게 될 것을 걱정하며 식혜를 지어 올리는지라
천사 종도들과 나누어 잡수시니 곧 눈이 그치고 일기가 화난 케 되어
장설로 쌓인 눈이 경각에 다 녹아 도로가 통하므로 곧 돌아오시니라
해석
모악산 용안대:
염제 신농씨에 대한 고사를 지내기 위해 종도들을 데리고 용안대에 오르셨다.
눈이 크게 내려:
사실은 증산께서 천기를 미리 알고 계셨다.
먹을 것이 없을 때 남은 양식으로 식혜를 지으라 하시면
그 말씀을 듣고 각 종도들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시고자 한 일이다.
종도들: 이때 모악산에 올라갔던 종도들은 모두 다섯 명이다.
최창조 최내경 박공우 차경석 김형렬이다.
2:36 을사 정월 그믐날 형렬로 더불어 부안 성근리 이환구의 집에 가사
여러 날 머무르실새 환구가 부안읍 사람 신원일을 자주 천거하거늘
천사께서 원일을 부르시니 원일이 와 뵈옵고 천사를 자기 집으로 모셔오니
원일의 부친과 아우는 천사를 믿지 아니하고 오래 머무르심을 싫어하는지라
원일이 청하여 가로대 가친이 본래 고기잡이를 즐겨하여 해마다 경영하다가
거년에는 폭풍으로 인하여 큰 손해를 보았으니
금년에는 풍재를 없게 하여 고기잡이를 잘되게 하여주시면 가친을 위하여 다행 이겠나이다
천사 가라사대
그일은 어렵지 아니하니 많은 이익을 얻은 뒤에 천 냥을 나누어 오라 장차 쓸데가 있노라
원일 부자가 기뻐하여 허락하더니 이해에 과연 풍재가 없고
칠산 바다에서 원일 부친의 고기잡이가 제일 잘되어 큰 돈을 번지라
천사 원일 부친에게 사람을 보내어 허락한 돈 천냥을 보내라 하시니
원일 부친이 전혀 언약을 어기고 보내지 아니하거늘
천사 원일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는 대인을 속임이라
내 일은 모든 것을 신명으로 더불어 작정하는 것이므로 한 가지라도 사사로이 못하노니
이 뒤로는 그대 부친의 고기잡이가 철폐하게 되리라 하시더니
그 뒤로는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아니하므로 마침내 고기잡이를 폐지하니라
해석
이 환구: 그 당시 첫 생을 나온 사람이었다.
이환구는 순박하고 어진 인물이었다.
현재도 선량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있다.
신원일과 부친: 현생에 나오지 못했다.
천 냥: 일제시대 이었기 때문에
조선 백성이 핍박을 받아도 굶어죽지는 않게끔 하시려고 본 공사이다.
2:37 삼월에 일진회원과 전주 아전이 서로 다투어
정창권이 부중 백성을 모아 사대문을 잠그고 일진회원의 입성을 막으며
사방으로 통문을 돌려서 민병을 모집하여 일진회를 초멸하려 하거늘
천사 가라사대 어렵게 살아난 것이 또 죽게되니 구원하여 주리라 하시고
화정리 이경오에게 돈 일흔 냥을 청구하시니
경오가 돈이 없다고 거절하거늘 다른데서 일곱 냥을 주선하여 오사
가라사대 이 일곱 냥이 능히 일흔 냥을 대신하리라 하시고
형렬을 데리고
전주 용머리 고개 주막에 이르사 행인을 많이 청하여 술을 먹이시고
종이에 글을 써서 그 집 문 돌저귀와 문고리를 연결하시더니
이날 석양에 이르러 일진회와 아전이 화해하여
사대문을 열고 일진회원의 입성을 허락하니라
이날에 쓴 돈이 엿 냥이라
천사 형렬에게 일러 가라사대
옛사람은 바둑 한점으로 십만병을 물리쳤다 하는데
이제 나는 돈 엿냥으로 일진회와 아전의 싸움을 끌렀으니
내가 옛사람만 같지 못하다 하시니라
정창권:
정창권은 부유했고 장군의 기질이 있어 일을 도모하고 앞장서려하는 것을 좋아했다.
민병을 모집하여 일진회를 초멸하려 했을 당시 일진회는 동학민이 대부분 이었는데
이 무고한 농민을 모두 죽이려 했던 사건이다.
정창권은 전생이 노자였다.
대순전경 4:172
또 노자老子를 부르사 가라사대
‘세속에 산모가 열 달이 차면 신 벗고 침실에 들어 앉을 때마다
신을 다시 신게 될까하여 사지에 들어가는 생각이 든다 하거늘
여든 한 해를 어미 뱃속에 있었다 하니 그런 불효가 어디 있느냐.
그대도 이 세상에서 쓸데없으니 딴 세상으로나 갈지어다’ 하시니라』
증산께서 노자가 정창권으로 온 것을 알고 계셨다.
정창권이 2생을 나와 좋은 마음을 품지 못하고
사람을 해하면서까지 뜻을 이루려하는(해원)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다음 생을 받아 이 세상에 오지 못함으로 하신 말씀이다.
이경오에게 돈 일흔 냥을 청구하시니 경오가 돈이 없다고 거절하거늘:
이경오는 전생에 남의 집에서 물건을 잘 훔치며 살았다.
그리고 이경오는 돈이 있었는데 없다고 한 것으로
증산께서 이경오의 업을 끌러 주시려 하였는데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
다른데서 일곱 냥을 주선하여 :
최내경에게서 일곱 냥을 주선 하였다.
일곱냥이 최내경에게서 온 것을 몰라서 기록에서 뺀 것이 아니라
최창조 최내경의 공덕은 완전히 배제되었다.
옛사람은 바둑 한 점으로 십만병을 물리쳤다:
여기서 옛사람은 증산께서 말씀 하신 5대 성인의 한 명인 자사를 가리킨다.
자사는 공자의 손자로서 공자보다 뛰어난 인물이었다.
춘추전국시대 당시 적군이 십만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 왔다.
자사는 단 한 번도 바둑을 둔 적이 없었지만
적국 바둑의 고수와 내기를 하여 이기게 되고
전쟁 없이 적군을 물리친 적이 있는 무척 뛰어난 인물이었다.
증산께서 당요, 순임금, 우왕, 문왕과 이윤, 자사를 오대 성인을 꼽으셨다.
문왕과 이윤을 한데 묶은 이유는 문왕을 성인으로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고
이윤을 성인으로 하기에도 부족함이 있기에
두 사람을 한데 묶는 공사를 모셨는데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고 있는 문왕과 이윤 도수이다.
자사는 천지공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자사(子思):B.C 585~432
대순전경 9:23
옛적에 자사(子思)는 성인이라.
위후(衛侯)에게 말하되 약차불이 국무유의(若此不已 國無遺矣)라 하였으나
위후가 그 말을 쓰지 않았으므로 위국(衛國)이 참혹히 망하였나니
나의 말도 또한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지니 오직 너는 나의 말을 믿으라.
-18사략-
공자의 손자 급(伋)은 자(自)를 자사(子思)라 했다.
자사는 중용을 지었다.
맹자는 자사의 문인이다.
맹자는 7 편의 책 ‘맹자’를 편술했다.
노자는 도덕경을 지었다.
자사편-
전국 때 자사가 위공을 섬기고 있었다. 그가 위공에게 권했다.
“구변을 장군으로 등용하십시오.”
그러니까 위공은 “구변은 전에 관리로 있을 때
한 집에 달걀 두 개씩을 배당해서 거두어 먹은 일이 있소.
그러니까 그를 쓸 수 없소.”
“성인이 사람을 쓰는 것은 마치 목수가 재목을 다루는 것과 같아서
그 좋은 점을 살리고 나쁜 점을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자(버드나무와 가래나무)따위 아름드리 좋은 재목에
몇 자 썩은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훌륭한 목수는 결코 이것을 버리지 않습니다.
주상께서는 이 전국시대에 처해 가시는 데
겨우 두 개의 달걀 때문에 나라를 지킬 장수를 버리려 하십니까?
이것은 이웃 나라에 알리지 못할 일입니다.
” 위공이 내어 놓은 계략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타당하지 않은 것이라도
모든 신하가 일제히 입을 모아 찬성한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자사가 말했다. “주상의 정치는 나날이 그릇된 방향으로 기울어질 것입니다
주상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면 스스로 이것을 타당하다고 하시고
경(卿)이나 대부(大夫)도나 그 잘못을 감히 바로잡으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또 경이나 대부도 자기가 한 말을 스스로 옳다고 하고
사(士)나 서민은 그것이 옳 지 않아도
감히 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시(詩)에도 스스로 성인이라고 하면
잘잘못조차 분별 못하네 누가 까마귀의 자웅을 알랴 했습니다.”
자사는 충직한 신하로서
주군을 위해 어느것에도 굴하지 않고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인물 이었다.
-자사의 中庸중용-
中者 不偏不倚無過不及之名 庸 平常也
(중자 불편불의무과불급지명 용 평상야)
"中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의지하지 않아서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것이며,
庸용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입니다."
不偏之謂中 불편지위중
不易之謂庸 불역지위용
中者중자 天下之正道 천하지정도
庸者용자 天下之定理 천하지정리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을 中이라 하고,
변하지 않는 것을 庸용이라고 합니다.
☆평생을 이루고자 하는 것 중에 가장 이루기 어려운 것이
중中이자 용庸이 아닌가 한다.
또한 이것을 이루면 가장 큰 것을 얻게 되는 것이리라!!
그 어지럽고 혼란한 시절 그 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덕목이 중용이었을 것이다.
자사는 스스로 그것을 행으로서 가르쳤다.
자사는 바둑 한 점으로 얼마나 일어날지도 모를 살상을 막았다.
바둑을 모르는 사람이 과연 바둑의 고수를 이길 수 있었을까!!
자사는 바둑을 둔 적이 없었으나
당요가 바둑의 이치에 통했기에 바둑을 만들 수 있었듯이
자사는 전국시대의 사람이었을 뿐
당요나 다름이 없이 모든 천리를 깨달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증산께서 이런 자사를 두고 칭송을 하셨다.
“옛사람은 바둑 한 점으로 십만 병을 물리쳤다 하는데
이제 나는 돈 엿 냥으로 일진회와 아전의 싸움을 끌렀으니
내가 옛사람만 같지 못하다 하시니라”
증산께서 자신을 낮추시기까지 하며
자사의 바둑 한 점의 공적을 드러내신 것은
그가 당요와 버금가는 성인군자이었기 때문이다.